서 평

이처럼 사소한 것들

< 저자 클레어 키건   |   출판 다산책방>

글. 양원희

  •  소설치고는 서사도, 결말도 참 싱거웠다. 사소했다.
     사소함... 보잘것없이 작거나 적음...
     그런데 작거나 적기는 한데 보잘것없진 않았다.
     울림은 꽤 묵직했다.
  •  소설의 배경이 되는 막달레나 세탁소는 가톨릭교회에서 운영하고 아일랜드 정부에서 지원한 시설 중 하나다. 성매매 여성, 혼외 임신을 한 여성, 고아, 학대 피해자, 성적으로 방종한 여성, 심지어 외모가 아름다워서 남자들을 타락시킬 위험이 있는 젊은 여성까지 수용했고 착취했으며 학대했다. 이곳은 거대했지만, 그 안의 존재들은 너무 작았기에, 동네 사람들은 사소한 자신의 양심은 내던지고 묵인한다.
  •  그러나 마침내 소설의 주인공 펄롱은 사소한 용기를 내었다. 그렇지만 용기를 낸 결과가 사소할지, 역사의 흐름을 바꿀 큰 물결이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리고 이러한 펄롱의 용기는 비록 아버지가 누군지 모른 채 성장했지만, 성장 과정 중 주변 사람들로부터 받은 사소한 사랑과 친절에서 기인했다.
  •  ‘우리는 사소한 것에 목숨을 건다’
    한참 유행했던 책의 제목이다. 우리는 사소한 일에도 마치 대단한 문제가 일어난 것처럼 행동한다. 이 때문에 문제 해결을 위해 우왕좌왕하지만, 오히려 문제를 복잡하게 만든다는 것이 작가의 논지다.
  •  그럴 수 있다. 그런데 이것은 결과가 발생한 후의, 그 결과에 대한 시각을 단순화하고 확대해석하지 말자는 이야기다. 반대로 그 결과를 이루기까지 쌓인 사소한 것들은, 생각보다 큰 결과와 흐름을 만들 수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 이미 지나갔다.
    하지 않은 일, 할 수 있었는데 하지 않은 일 - 평생 지고 살아야 했을 일은 지나갔다.
    계속 버티고 조용히 엎드려 지내면서
    사람들과 척지지 않고 살아야지
    함부로 움직였다가는 모든 걸 다 잃는 일이 너무나 쉽게 일어난다.
    하루 벌어 하루를 버틸 수 있으면 다행이고
    조금이라도 남겨서 앞날의 재앙에 대비할 수 있으면 기적이다.
    다른 사람에게 동전 한 닢, 마음 한 켠이라도 내주는 것도 사치인지 모른다.

     책 속의 이 문장을 계속 되뇌었다. 그냥 너무 슬펐다. 사람들의 사소한 시선과 편견에 갇혀, 정작 중요한 나 자신은 잃고 사는 게 아닌지, 대충 타협하면서 대수롭지 않은 척 사는 삶에 나는 이미 너무 매몰되어 버린 건 아닌지, 깊은 슬픔과 아쉬움이 몰려왔다. 딱히 슬픈 문장은 없었지만, 담담하고 싱겁게 그려낸 이야기 속의 존재들 한 명 한 명이 너무 가엾고 안타까웠다. 책을 덮고 마음 한 켠이 서늘해져서 멍하니 몇십 분을 앉아 있었다.
  •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이라고 했던가.
    밀란 쿤데라가 ‘프라하의 봄’을 겪으면서 자신의 조국을 떠나 다른 나라로 망명을 하고 쓰기 시작했다는 또 다른 소설이 생각났다. 20대에 읽었을 때는 도덕적인 기준만 들이대느라 이 책이 이해가 잘 안되었는데, 삶이 결코 가벼울 수 없었던 그 시기에 가벼움을 논했다는 그 마음이 40대가 되고 나니 조금 이해가 된다.
  •  뭐가 옳은지는 모르겠다. 이것조차 고민하기 싫을 정도로 내 생각과 말은 깃털처럼 가벼워졌다. 세상에 홍수처럼 넘쳐나는 이야기에 귀는 얇을 대로 얇아졌고, 온갖 자극적인 이야기와 짧은 영상들 때문에, 사고의 깊이는 얕을 대로 얕아졌다. ‘융통성’이라는 이름으로 사소한 양심은 흘려보낸 것 같다.
  •  그렇지만.
    세 아이의 엄마로 살아가는 삶의 무게가 무거워졌기 때문에, 너무나 많은 일에 치이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사고의 흐름이 가볍고 짧아졌다고 한다면 합당한 변명이라도 될까? 가볍고 성급한 나의 결정 뒤에, 때로는 후회와 죄책감으로 몸서리치도록 괴로운 시간도 많았다는 것으로, 내가 외면했던 사람들에게 조금의 용서라도 받을 수 있을까?
  •  클레어 키건의 ‘이처럼 사소한 것들’
    안 갈 것 같던 더위가 조금씩 물러가는 깊어 가는 가을에, 잠깐 멈춰 몇 번이고 읽어보았으면 좋겠다. 담담한 문장들을 마음으로 느껴보았으면 좋겠다. 아마 각자가 가진 서사와 스토리만큼의 ‘나만의 인생 소설’이 되지 않을까 싶다.